엔지생각 – 2024년 58일차 큐티 마태복음 21장 21-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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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기도
개인적인 기도 제목이 포함되어 있어 여는 기도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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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마태복음 21장 21-22절) 개역개정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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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기도 응답은 신앙 생활에 있어서 생각보다 큰 영역이고 중요한 부분이다. 기도 응답에 대한 마음과 태도 때문에 신앙이 깊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도 응답이 없다고 생각해서
신앙이 약해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위에 나오는 21절과 22절과 같은 말씀이나 마태복음 17장 20절과 같은 말씀을 보면 내가 예수님을 믿고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기도하면
100%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드리는 기도에 내가 원하는 답을 받지 못했을 때에 낙심하게 되거나 “내가 의심했나?”생각하며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위 말씀이나, 마태복음 17장 20절 말씀에도 핵심 조건 같은 것이 있다. 바로 믿음이다. 17장 20절에도 겨자씨 만큼의 믿음이 있어야 하며, 위 말씀에서도 “믿음이 있고”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 일단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믿는 어떤 대상이 필요하다. 그럼 위 말씀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겠다.
그럼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계신다” 혹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드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물론 그것 또한 믿음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깊게 생각해보자. 부모가 아이에게 “난 너를 믿어” 혹은 “너 자신을 믿어”라고 했을 때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일까? 반대로 아이가 부모를 믿는다는 것이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 그치는 것인가? 성경에서는 여러 차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럼 생각해보자. 부모가 자녀를 믿고,
자녀가 부모를 믿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일단, 한 가지 차원은, 자녀가 때로는 바른 길로 가지 못하거나, 실패 앞에 섰을 때 부모가 “난 너를 믿어”라고 했을 때, 그가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 혹은 실패 앞에 섰을 때라도 그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녀가 언젠가는 바르게 돌아올 것이고, 실패 앞에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것 아닐까? 더 나아가서는 그 부모가 항상 그 자녀의 편이라는 뜻 아닐까? 대부분 위 말씀이나 마태복음 17장 20절 말씀을 보고 생각하는 “믿음”은
“내가 의심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무조건 다 들어주실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러고서 만약에 “저 로또 당첨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다고 했을 때
과연 하나님께서 “오 그래, 옛다 로또다”하실까? 과연 그게 믿음이 있는 것일까? 그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라딘에 나오는 지니쯤으로 생각하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알기 쉽게, 5살 된 아이가 길을 가다가 “아빠, 아이스크림 사주세요”라고 할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것이 옳은가?
아이가 매번 사탕, 초콜릿, 과자, 아이스크림, 등 달라고 할 때마다 준다면, 그 아이는 유아 당뇨에 걸리고 그 부모는 잘못된 부모로 낙인 찍힐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는 5살 아이와 다를까? 5살 아이는 “아빠 아이스크림 주세요”부터 시작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아빠 돈 주세요”로 바뀌는 것은 금방이다.
결국 우리도 “하나님, 돈 주세요”라고 한다면 중학생과 다를 것이 없고 이는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욕심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만약에 반대로 아이가 너무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파서 “아빠, 목 말라요” 아니면 “아빠, 배고파요”라고 하면 얼른 마실 것을 주거나 먹을 것을 줄 것이다.
그러면 어찌보면 핵심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는 것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근데 여기서 마음에 걸리는 것은 22절이다.
이때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믿고 구하면 다 받는다라고까지 말씀하신다. 그러면 마치, 욕심이든 아니든, 믿고 구하면 다 주신다는
것처럼 들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마태복음 17장 20절 직전의 상황을 보면 귀신을 쫒아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즉, 하나님의 일을 하는 부분에 대해서 제자들이
자신들은 왜 하지 못했는지 물은 부분이었다. 즉, 이 또한 욕심을 채우는 부분이 아니라 사역함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이었으나 이루지 못한 부분에 대한 말씀이었다고 생각한다.
위 구절도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배가 고픈 가운데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 갔는데 열매가 없는 것을 보고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한 것을 보고서 제자들이 말한 이후에
나온 구절이다. 일단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신 이유는 둘째 치더라도, 제자들은 예수님께 어떻게 그렇게 기적과도 같은 신기한 일을 하셨는지를 물어본 것이다.
어떻게 욕심을 채웠는지를 물어보신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위 구절은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욕심이든 뭐든 다 들어주실거야”의 맥락이 아니라, “믿음으로 기도하고 구하면
불가능해 보여도 다 받을 수 있어”라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말씀이지,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실거야라는 맥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지 무슨 소원 게이지를 채우는 것과 같은 그런 미신적인 행동이 아니다. 하나님과 소통한다는 것은 무조건 “예스”를 바라면서
기도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그건 “답정너”의 태도, “답은 정해져있고 넌 대답만해”이런 태도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보니 2가지로 정리가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데 있어서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자. 그리고 두 번째는 진짜 그것이 필요한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믿고 의심하지 말고
끝까지 구해보자. 이 2가지가 되겠다. 그럼 지금 바로 기도로 한번 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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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기도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또 내가 구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내 안에는 항상 욕심이
가득합니다. 그런 헛된 마음들을 빠르게 내려놓게 하시고 내가 하루 하루 살아갈 때에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가게 해주세요. 그리고 기도할 때에는
욕심에서 나오는 기도 제목이 아니라 진정으로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구하는 기도 제목으로 나의 기도를 채우게 해주세요. 그리고 항상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러한 것들을
구하게 해주세요. 응답을 기다리고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주세요. 주님 지금 제가 바라는 것을 2가지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제가 이곳에 적지는 않지만 지금도 기도드리고
항상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이게 제 욕심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믿음으로 구하며 나아갑니다. 내게 말씀해주세요. 이 모든 말씀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